2021.01.09(토) 큐티: 요한일서 5:13-21
<묵상하기>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음을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것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온다.
베드로와 요한은 사도행전 3장에서
미문 곁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 된 사람을 향해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였다.
행 4:12에서는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고 하였다.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에게
천사가 전한 아기의 이름이 예수였다.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그리고 천사는 예수라는 이름의
뜻도 설명하였다.
그 이름은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그것은 성령이 임하셔야만
고백할 수 있는 내용이므로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은
성령이 임하심으로 그가 예수 안에
예수가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서 들으시며
구한 그것을 응답하여 주신다.
즉 이 말씀에 전제 조건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할 때가 많다.
그 전제 조건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어
그가 예수 안에, 예수가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연합된 사람이므로
그는 하나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분의 뜻에 따라 구한
그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도할 때 "나의 기도를
이루어주소서" 라고
소망하기 보다는 "나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기도이기를
소망합니다" 라고
기도해야 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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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유명한 말씀, 그래서 누구나
암송하는 말씀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을
안즉....중략...."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 바로 아래 매우 난해한
말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16절에서 요한은 죄를 죽음에
이르는 죄와 죽음에 이르지 않는
죄를 구분하고 있다.
얼핏 보면 중보기도를 해야 할 죄와
중보기도가 의미가 없는 죄가
있다는 뜻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십자가 아래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다는 말씀과
크게 대치되는 말씀이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자료들을 찾아보니
신학자들 사이에 가장
논쟁이 심한 말씀 중 하나가
이 말씀이라고 한다.
사도 요한이 죽음에 이르는
죄라고 명명한 죄는 오늘 말씀
마지막 절에서 우상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부정하고
성령을 훼방한 죄를 의미하는 것 같다.
예수님도 예수님의 기적과 표적을
바알의 도움을 받아 행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던 바리새인들을 향해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용서받기
어려움을 경고하신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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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아래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다는 것은 진리이다.
그러나 죄를 사함받아
구원받기 위해서는 먼저
애통과 통한의 진심어린
회개가 있어야 한다.
사도요한이 말씀한 죽음에 이르는 죄란
하나님을 모욕하고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일삼고도 전혀 회개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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