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05(일) 큐티: 고린도전서 15:12-19
<묵상하기>
성경은 죄의 삯이
사망이라 기록하였다.
온 인류는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죄에 대한 댓가로
죽게 되었다.
즉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죄로 인해 사망의 지배를
받는 사망의 종이 되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 모든 죄를 대속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사망의 종노릇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만 있고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사역은 반만 성취된 것이다.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해 죄는 대속되었으나
여전히 사망으로부터
놓여나지 못한 것이 된다.
예수님의 부활은 믿는 사람
모두 부활하게 됨을 보이시는
첫 열매이기 때문이다.
즉 부활은 믿는 자들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
사망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음을
나타내는 표징이다.
<적용하기>
신학대학 교수이신
목사님의 부활에 대한
영상 강의를 본 적이 있다.
그 분에 따르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실이
있다고 한다.
첫번째 사실은
누구나 관찰 가능하여
그 관찰을 통해 그 일이
존재함을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 사실,
즉 실증적 사실이다.
과학적 사실은 반복된
관찰로 그 사실이 실재임을
증명하게 된다.
두번째는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관찰에 의해서는 존재했음을
밝힐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은
반복적인 관찰로
입증할 수 없다.
그러면 역사적 사실은
어떻게 입증하는가?
역사적 사실은 조사되어
기록된 사실을 해석하여
입증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두가지
접근이 사용된다.
첫번째는 "그 사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하고 가정하여,
이 가정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 더 많은지,
설명할 수 없는 내용이
더 많은지를 비교 및
고찰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그 사실을
주장하는 증언, 기록,
고고학적 유물들이
일관성이 있는지,
적절한지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한다.
먼저 예수님은
부활하지 않았다고
가정할 경우, 이 가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 보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 11 제자들의 행동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한다.
제자들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무서워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당시,
모두 도망갔었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이
처형된 바로 그 장소에
담대하게 나타나, 예수님과
부활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끝내 대부분이
순교하였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의
이러한 행동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한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것이 아니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당시 기득권의 정점에
있었던 바리새파 엘리트
바울이, 그동안의 자신이
목숨 걸고 지키려고 했던
신념과 가치를 모두 버리고
자신이 없애려고 했던
그리스도 신앙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결국 순교하였다.
그러면 부활을 설명하는
증언, 기록, 고고학적 유물들이
일관되게 존재하는가?
우선 부활을 설명하는
기록으로는 신약성서
전체가 해당된다고 한다.
어떤 학자에 따르면
크리스마스가 없다면
신약성서에서 제거될
부분이 불과 몇 장에
불과하지만, 부활이
없다면 신약성서
전체가 없어지게
된다고 하였다.
부활의 증인은 있는가?
바로 우리가 며칠 전에
읽은 고린도전서에
따르면 증인이 오백명
이상이 된다.
부활은 우리의
믿음 가운데만
존재하는 사실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사실임을
보이는데 좋은 예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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