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9(월) 큐티: 전도서 7:1-14
<묵상하기>
*더 나은 것*
세상 사람들이라면
좋은 이름보다 좋은 기름을,
초상집보다 잔치집을,
슬픔보다 웃음을,
책망보다 노래를,
일의 시작이 끝보다
더 낫다고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지혜로운 사람은
그 반대의 것들을
더 나은 것으로 여긴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나은 이유는 좋은 이름은
그 사람의 삶을 기억하게
하나, 좋은 기름은 그가
남긴 재물만 기억하게
하기 때문이다.
초상집이 잔치집 보다
나은 이유는 초상집은
누구나에게 다가 올
죽음을 생각하고 겸허하게
하나, 잔치집은 흥겨움과
부러움에만 휩싸이게
하기 때문이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은
이유는 웃음보다
슬픔 가운데 사람이
더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혜자의 책망이
우매자의 노래보다 나은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우매자의 노래라는 것은
아첨이나 거짓된 칭찬을
말하는데, 그러한 것은
가시나무가 타버리듯
순식간에 없어지고 아무
유익이 없다.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나은 것은 일의 시작은
그 사람의 단순한
열심으로도
일어날 수 있지만,
일의 끝은 반드시
인내로 참아야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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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더 나은 가를 분별하는
능력은 지혜, 즉 진리로부터
나오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분별력은
위기의 순간에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의
그늘 아래 있는 것이
부의 그늘 아래
있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구도 펼 수
없음을 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자신을
돌아보며 산다.
즉 형통한 날이라고 마냥
기뻐하거나 곤고한 날이라고
마냥 낙심하며 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인생에
형통과 곤고함이 임으로
나타나도록 하셔서 인생을
예측할 수 없게 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성급하게 노를 발하거나,
노를 가슴에 품고 살지 않는다.
옛날이 오늘 보다 낫다고
한탄하지도 않는다.
지나가 버린 시간에
연연해 하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기도하기>
주님.
주님이 주시는 지혜의
말씀으로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닌, 진실로 저희에게
좋은 것을 택하며
살게 하소서.
형통한 날에는 앞으로 올
곤고한 날이 염려되어
마음껏 기뻐하지 못합니다.
곤고한 날에는 곤고함의
늪에 빠져서 자신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이러한 우매함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며,
우는 자들과 함께
울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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