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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사도행전

아덴에서의 뼈아픈 경험

by 운석57 2023. 8. 2.

2023.08.02(수) 큐티: 사도행전 17:16-34

 

<묵상하기>

 

*아덴에서의 뼈아픈 경험*

그리스 북쪽 마게도니아
지역에 속한 베뢰아에서 
남쪽 아가야 지역에 속한 
아덴까지는 먼 길이었다.

아덴은 베뢰아에서
뱃길로 나흘이 걸리는 
300 km 이상 떨어진
도시이다.

아덴은 지금의 
아테네를 말한다.

베뢰아의 형제들은 바울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그 먼 길을 동행했다.

그리고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아덴으로 보내 달라는
바울의 부탁을 받고 
베뢰아로 돌아갔다. 

아덴에 홀로 남겨진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며 아덴을 
돌아보았다.

로마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정치적인
통치일 뿐, 세상을
문화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아덴이었다. 

헬라 문화의 중심지인
아덴에 처음 온 바울 역시
헬라의 고등 학문을 배운 
사람으로서 아덴에 대해 
큰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호기심은 
곧 분노의 감정으로
바뀌게 된다.

우상 숭배로 가득찬
아덴의 문화에
격분한 것이다.

아덴은 우상들의 
소굴 밑에 세워진
도시였기 때문이다.

누가가 아덴을 본 바울의 
심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분노"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번역된 70 인역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에 대해 하나님이 
보이신 분노를 표현한 
바로 그 단어라고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아덴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아덴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 모든 신들을 
숭배하는 신들의 
집합체였다.

바울은 먼저 회당에서 
유대인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설교하였다.

그리고 아고라에서
일반 아덴 사람들을
상대로 설교도 하고 
변론도 하였다.

당대 철학의 양대 사조였던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이 바울의
변론을 듣게 되었다.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은
무신론자들로 삶의 
목표는 오직 쾌락을
통한 행복 추구라고
주장하였다.

반면, 스토아 철학자들은
범신론자들로서 자연 뿐
아니라 신 조차도 불과
공기를 재료로 한 물질적
조합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두 철학 학파에 속한
철학자들은 바울을 
철학자들의 토론 장소인
아레바고에 세웠다.

바울의 변론 주제에 
대해 흥미를 가진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예수라는
인물과 그의 부활은 
그들에게 매우 신선한
토론 주제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아덴의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새로운 사상을 찾아
그것을 토론하는 것 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

그러한 아데네 
철학자들을 위한 
바울의 선교가 
시작되었다.

우선 아테네 시민의
범신론적 종교관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는 제단에 대해 
언급하였다.

아덴 사람들은 신들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하나의 신이라도 빠트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고
그러한 제단까지 만든 것이다.

바울은 아덴 시민들이
알지 못하고 섬긴 
그 신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알렸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으로 만민에게
생명의 호흡을 주신 분이라
설명하였다.

또한 그리스의 시인들이
노래한 것처럼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힘입어
살며 움직이며 존재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강조하였다.

그러한 하나님이 
정하신 분, 즉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셨는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것이 바로 그 증거라고
역설하였다.

그러니 모두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숭배에서 떠나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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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설교를 들은
철학자들과 시민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조롱하였다.

혹은 일부 사람들은
바울의 이야기가
흥미로우니 더 듣기를
원한다고 말하였다.

아덴에서 바울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사람은 다른 도시에
비해 적었다.

누가는 아레고바오 
광장의 관리와 여인 
한 사람이 믿게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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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에서의 경험은
바울에게 뼈아픈 
것이었다.

철학자들과 철학적
변증을 통해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한계가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덴 
다음의 선교지였던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사람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전하지 않았다 (고전 2: 1).

고린도에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로만 전하였다고
고백하였다.

 

 

<기도하기>

 

주님.

아덴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신"이라
불렀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을 
그렇게 부릅니다.

그들로 하여금 세상
가운데 더듬어 찾는 
손길 끝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게 하소서.

하나님이 멀리 계시지 
않음을 알게 하소서.

더듬어 찾는 손길이라도 
내밀게 하여 주소서. 

주의 일을, 주의 역사하심을
사람의 화려한 말이나,
사람의 지혜로 전하지
않게 하소서.

사람의 눈에 미련해
보일지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만 전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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