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1(일) 큐티: 마가복음 14:1-11
<묵상하기>
*배반의 이유*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을
위해 큰 돈을 들여 장만한
옥합을 깨뜨린 여인과
자신을 위해 큰 돈을
벌고자 예수님을
팔았던 제자가
대비되어 등장한다.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기록된 내용에
조금씩 차이가 있어
혼란을 주기도 한다.
우선 이 일이 일어난
시점에 대해 차이가
있다.
마태, 마가, 요한은
이 일이 십자가에
달리신 마지막 유월절
2~6일 전에 일어난
것으로 기록하였다.
반면, 예수님의 사역을
일어난 순서대로 차례로
기록한 누가는 이 일이
예수님의 사역 초반에
일어난 것으로 기록하였다.
장소에 대해서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마태와 마가는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은 시몬의 집이라
기록하였다.
누가는 한 바리새인의
집이라 하였고, 요한은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나사로가 사는 베다니
마을이라고만 기록하였다.
옥합을 깨뜨린 사람에
대해서도 차이가 있다.
마태와 마가는 무명의
한 여인이라고만
기록하였다.
누가는 죄를 지은
여인이라고 하였는데
신약 성경에서 죄를
지은 여인이라 함은
창기를 의미한다.
반면, 요한은 그 여인의
이름을 분명하게
밝혔는데,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라고 했다.
여인이 어디에 향유를
부었는지도 차이가 있다.
마태와 마가는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고
했고, 누가와 요한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다고
했다.
여인이 향유를 부은
사건의 상세한 내용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사람들의 기억에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어난 시점이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사건이 한 번이
아니라, 적어도 두 번
일어난 것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한 번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죄 지은 여인에 의해,
한 번은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에 의해
두 번 일어났다는
것이다.
여하튼 요한복음에 따르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은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이다.
그녀는 거금 삼백
데나리온을 치르고
구입한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이 장면을 보고
제자들은 모두
놀랐다.
그러나 그 중에는 화를
낸 사람도 있었다.
요한은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린 것을
보고 화를 낸 사람은
바로 가룟 유다였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가룟 유다가 화를 낸
명분은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었는데,
헛되게 낭비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향유를
부은 마리아를 탓하지
말라고 하셨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면, 앞으로
기회는 많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것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복음이 전해지는
곳이면 어디나, 그녀가
행한 일이 전해져 기억될
것이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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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들은 후,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을
만나서 예수를 넘겨주기로
밀약을 맺는다.
즉 여인이 향유 옥합을
깨뜨린 사건이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는데 촉발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왜 그랬을까?
예수님이 수난,
죽음, 부활에 대해
세 번이나 말씀하신
것으로 인해, 가룟
유다의 마음은 점차
실망으로 채워져 갔다.
그는 예수님이 로마를
무력으로라도 정복하고
성전과 유대 왕국을
회복시키기를 기대하고
제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예수님은 성전이
이방인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될 것을
예언하셨다.
그토록 성전의 영광이
다시 꽃 피우길 바랬는데
성전이 파괴된다 하니,
열심당이었던 가룟
유다의 실망감은
더욱 깊어졌다.
거기에다 예수님은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이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것이라 하시며,
자신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셨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실오라기 처럼 남아
있던 마지막 기대와
희망을 모두 버리고
배반의 길로 달려갔던
것이다.
<기도하기>
주님.
예수님이 자신의
수난, 죽음, 부활을
말씀하실 때, 그것을
귀담아 들은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귀 담아
들은 한 여인은
자신의 귀한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했습니다.
그것을 귀담아 들은
한 사람은 예수님의
팔아 넘길 계획을
세웠습니다.
한 여인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위해
헌신의 길을,
한 사람은 배반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주께 가장 귀한 것을
드려 헌신하지 못할 망정,
배반의 길은 가지 않게
도우소서.
환난의 날에 배역하는
자가 아닌, 옥합을
깨뜨리는 여인이
되기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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