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3(일) 시편: 시편 44:1-8
<묵상하기>
*주님의 이름값*
시편 44편 역시 고라
자손이 지은 마스길,
즉 교훈적인 노래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어떤 배경 속에서
이 시편이 쓰여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앗수르 산헤립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했던 히스기아 왕
시기에 쓰여졌을 것으로
추론한다.
5절에 "우리 대적을
누르고" 하는 구절과
칼과 활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다.
이를 목격한 남유다는
겁에 질려 애굽을
의지하였다.
이에 분노한 앗수르가
남유다를 침략하는데,
이것이 1차 침략이다.
앗수르의 1차 침략에서
남유다는 패배한다.
하나님이 애굽을
의지하는 유다를
기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에 히스기아 왕과
남유다 백성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다.
그리고 앗수르의 2차
침공이 감행되었다.
이때 산헤립이 보낸
랍사게가 유대의 빨래터
앞에서 히브리어로
남유다와 하나님을
조롱하였다.
그 소리를 들은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성전에 들어가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된다.
시편 44편은 앗수르와의
1차 전쟁에서 패배한 후
지은 시편으로 보인다.
시편 기자는 전쟁에서
패배로 인해 낙담한
유대 백성을 향해
출애굽을 기억하라고
노래하였다.
출애굽은 아버지를
통해 자식들에게
대를 이어 전해졌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자손이면 누구나 듣고
자란 이야기이다.
그 때 가나안 땅에
오래 뿌리를 내리고
살던 뭇 백성을
쫓아내신 것은
주의 손이었다.
그리고 그 땅에
이스라엘을 심으시고
번성하게 하신 것
또한 주의 손이었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칼로 여리고와 다른
가나안 땅들을 정복한
것이 아니었다.
즉 이스라엘이 자신의
팔로 스스로를 구원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구원받았다.
이스라엘은 나라들
가운데 가장 작고
약한 나라였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가나안 땅에 심으셨을까?
그들을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어떤
요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뻐하신 것이
아니다.
그냥 그들을
기뻐하시기로
하나님이 정하셨다.
시편 기자는 그것을
기억하라고 노래하고
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기뻐하심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들을 기뻐하심으로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신 것을 종일
자랑하였다.
그것은 앗수르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주를 의지하면,
주의 이름으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칼과 활이 그리고
애굽이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주의 이름이
그들을 승리하게
하고 구원할 것이다.
주님의 이름값은
하나님의 권능이며,
하나님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기도하기>
주님.
주의 팔이 저희를
영원한 죽음에서
탈출하게 하시고,
하늘 처소에 영원히
살게 하십니다.
저희가 그럴 만한
덕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희를 사랑하시기로
저희를 기뻐하시기로
주께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고
연약한 저희를 세우사
주의 이름으로 용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용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저희 믿음을
굳건히 지키게 하소서.
칼과 활이 아닌,
주의 이름만을
굳게 의지하는
용사가 되게
하소서.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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