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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고린도전서

무엇이 중한가?

by 운석57 2022. 5. 15.

2022.05.15(일) 큐티: 고린도전서 7:17-24

 

<묵상하기>

 

바울은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할례를 서로에게 억지로 
맞추려고 하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할례를 억지로 서로에게
맞추려고 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 인종적, 민족적인 
차이를 과도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신분을 
믿음의 기준으로 삼지도
말라고 강조하였다. 

종이면 종의 상태에서
자유인이면 자유인 
상태에서 그대로
믿음 생활을 하면
된다고 하였다.

즉 인종이나 신분을
서로에게 억지로 
맞추려는 헛된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중한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과
동거하는 것이 중하다.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과 하나님과 동거한다는
것은 같은 의미이다.

결국 바울은 믿음 안에서 
인종, 신분을 모두 
넘어서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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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을까?

현재 교회 안에는 
이러한 차이가 없을까?

인종적, 문화적 차이는
지금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면 신분적 차이는?

현대는 사회경제적 수준이
신분을 만든다고 하니
신분의 차이도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교인들 사이의, 또는 
교회들 사이의 차이에 
대해 어떤 태도,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으로 생각된다.

교회 내에 또는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에 대해 둔감한 것도,
그렇다고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둔감한 것은 공감과 
배려심이 부족한 것이며, 
반대로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 또한 
그 차이에 대해 
집착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바울은 중요한 것은 
그러한 차이가 아니라, 
말씀임을 기억하라고 
권면한다.

말씀으로 채워지고,
하나님과 동거하는 
개인이나 교회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함을 갖게 된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차이를
담담히 바라보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족하게 
할 것이다.

충만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엔가
우리는 바울처럼 
고백하게 될 것이다.

"내가 비천에 처할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 12-13

바울에게 성령이
그러한 능력을 주셨다면, 
우리에게도 분명히 그러한 
능력을 주실 줄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