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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잠언

지혜가 주는 평안

by 운석57 2023. 10. 2.

2023.10.02(월) 큐티: 잠언 1:20-33

 

<묵상하기>

 

*지혜가 주는 평안*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지혜는 어디든 있다.

그러나 지혜는 특히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있다.

길거리, 광장, 시끄러운 길목,
성문 어귀, 성의 한 가운데...

그 곳이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고 하였다.

지혜 역시 살아 
있어 잠잠하지 않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사람을 부르고, 
소리를 지르고,
소리를 발한다.

무엇을 부르고, 
무슨 소리를 
지르는 것일까?

깨우침을 부르고
깨우침의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잠언이기 때문이다.

바늘(잠)로 심령을 
콕콕 찌르는 
말씀(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혜는 사람의
심령을 찔러 진리를
깨우치게 하려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사람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

잠언 기자는 지혜의 
소리를 듣고 깨우침을 
얻어 돌이키는 사람에게 
지혜의 영이 부어진다고 
하였다.

이는 요한계시록 
3: 20의 말씀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다.

계 3: 20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릴 때, 그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자의 
마음에 들어 가신다고 
하셨다. 

즉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게 된다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지혜의 
음성을 듣고 돌이키는
사람에게는 지혜의 
영이 부어진다.

-------------------------

그러나 사람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혜가 아무리 사람들을
불러도, 아무리 손을 펴도
돌아보는 자가 없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불렀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이 붐비는 
길목, 광장, 성문 
앞에서 불렀지만,
돌아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사야 65: 2에는 
하루 종일 손을 펴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이
묘사되어 있다.

그것이 우리의
현주소인 것이다.

도리어 우리는 지혜의 
잠언을 멸시하고
무시하였다.

지혜가 심령을
자꾸 찌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재앙과 두려움,
근심 뿐이며,
비웃음 뿐이다.

그들에게 닥친
재앙과 두려움을
보고 지혜가 비웃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어 지혜를 
부르고 찾을지라도 
지혜를 만나지 못한다.

지혜는 분명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찾는 자가 나를 만나리라"
(잠 8: 17) 했다.

그런데 왜 지혜를
부르고 찾아도 만나지
못한다고 했을까?

진정 지혜를 구하고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앙을 피하려는
임시방편으로 
지혜를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를 사랑하여
찾고 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신 후,
떡을 먹고 배가 불러
자신을 붙드는 
사람들에게서
떠나가신 것과 같은 
이유이다.

그러나 지혜의 음성을
듣고 깨달아 돌이킨 
사람은 평안할 것이다.

그리고 지혜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아니다.

말씀의 근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평안이다.

 

 

<기도하기>

 

주님.

지혜를 찾아 
여기 저기
다녔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항상
저희 곁에 있었습니다.

길거리에, 광장에
시끄러운 길목에,
성문 앞에 있었습니다.

저희를 부르며,
저희를 향해
소리치며 있었습니다.

귀가 어두워서
지혜의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삶을 편안하고 윤택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혜를 구했기 때문에
만날 수 없었습니다.

아프지만 이제 지혜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저희에게 지혜의 
영을 부어 주소서.

저희가 평안할 줄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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